[취재파일] 영구임대주택 살면 외제 차도 못 타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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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8.16. 오전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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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청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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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어떤지) 알잖아요~"

영구임대주택 단지에 고급 외제 차가 즐비하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간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분께 들은 말입니다. 어려운 형편에 정신지체 장애까지 앓고 있어 영구임대주택에 살고 있다는 이 주민 분은 “젊고 멀쩡한 사람들이 고급차를 타고 다니면서 엉터리로 혜택을 받아가는 걸 흔하게 봤다”고 증언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대한민국 알잖아요”가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어봤더니 “알잖아요, 이렇게 엉터리로 하는 거...”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사회적 약자로서 일상에서 마주한 부조리가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진 셈입니다.

제보를 받고 찾은 현장은 너무나 솔직했습니다. 서초구의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렵지 않게 고급 외제차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벤츠, BMW, 폭스바겐, 재규어... 낡은 구 모델도 있었지만 최신 세단에, 신차 가격이 1억 원에 이르는 SUV까지 종류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혹시 방문객 차량이 아닐까 꼼꼼히 확인도 했지만 취재진이 발견한 외제차 대부분이 아파트 입주자에게 주어지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여섯 동 정도가 모여 있는 이 아파트 단지에만 16대의 외제차가 등록돼 있었습니다.

저희가 만나거나, 통화를 시도한 차량 소유주들은 특수한 몇몇 경우를 빼놓고는 대부분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아들, 혹은 딸이 준 차를 타고 다닌다거나 어쩔 수 없는 개인 사정 때문에 그렇다는 분들, 차량이 본인 명의로 되어 있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거나, 모른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내 차 내가 마음대로 못 타냐”, “여기 나 말고도 이런 차 많다”고 되레 화를 내시는 분들도 더러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소득이 없다면서도 회사에서 지급한 차량이기 때문에 타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러면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주제와 동떨어져 방송에는 미처 담지 못했지만, 외제차 소유주가 억지로 남의 임대주택에 얹혀사는 범죄에 가까운 사례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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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제 차 즐비한 '저소득층 임대주택'…임대료 체납하기도

● 영구임대주택, '최저소득층' 위한 주택

영구임대주택은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 가운데서도 기초수급자 수준의 ‘최저소득계층’을 위한 임대주택입니다. 법적으로는 생계급여 또는 의료급여 수급자, 국가유공자 또는 그 유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북한이탈주민 또는 한부모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중에서도 월평균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분들에게만 입주 자격이 주어집니다.

법이 강화돼 2년마다 자격 심사를 하긴 하지만, 자격만 되면 쫓겨날 걱정 없이 영구히 거주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보증금과 임대료도 매우 저렴합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보증금은 25만 원, 한 달 임대료는 5만 원 정도로 시세의 약 21.9% 수준에 불과합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렇다고 ‘영구임대주택 살면 외제차도 못 타냐’고 물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이에 대해선 법적 기준이 있습니다. 국토부와 보건복지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현재 가치 기준으로 2,522만원이 넘는 차량을 보유하면 영구임대주택 거주 자격이 박탈됩니다. 최저소득 계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나라가 세금 들여 짓고, 빌려주는 집인 만큼 취지에 맞게 운영하겠단 겁니다.

비싼 차 굴릴 능력 있으면 굳이 영구임대주택 살지 말고 다른 집에 살라는 거죠. 이는 영구임대주택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영구임대주택 입주 대기자는 3만 명에 이르고 평균 대기 기간은 2년에 달합니다. 정작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할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당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 차명 또는 리스차 보유…'법의 사각지대' 이용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외제차를 보유한 영구임대주택 거주자 140가구 가운데 대부분(77%)은 외제차를 본인이 아닌 자녀, 혹은 친척 명의로 차명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해당 세대에 같이 사는 세대원의 차량이 아니면 소득이나 자산 신고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한 겁니다. 리스 차량을 보유하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이 역시 리스나 렌트 차량은 자산신고기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허점이 있었습니다.

‘법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여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이기주의를 보이는’, 전형적인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출처: 고려대한국어사전)의 사례입니다. 이들 중에선 외제차를 타면서도 관리비나 임대료조차 미납한 사례도 39세대로, 28%에 달했습니다. 지역으로 따지면 서초, 강남 등 강남 지역에만 전체 사례의 20% 이상이 몰려 있었습니다. 

(공공임대주택에 살면서 외제차를 타는 이들에 대한 보도는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영구임대주택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보도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울 수는 없을 겁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몸이 불편한 부모를 위해 따로 사는 자녀가 본인 차량을 등록해 놓고 오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확인해보니 허술한 관리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2,522만 원 이하’라는 분명한 차량보유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선 주차관리 편의를 위해 일단 무조건 등록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직접 차량대장을 조회해보니 누가 봐도 기준을 넘어가는 고급 차인데도 버젓이 본인 명의로 등록된 게 많았습니다. 차주 입장에선 2년에 한 번 실시하는 자격 심사만 피하면 문제 될 게 없는 셈입니다. 

보도가 나간 뒤 많은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최초 제보를 해준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실(국회 국토교통위원장)에서는 당장 이번 국정감사에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기사에도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인 나라”, “누구를 위한 임대주택이냐” “당장 전수조사해라” 등, 공분 섞인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댓글들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요즘 화두인 ‘나라다운 나라’, 또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 별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편법과 부조리를 바로잡고, 있어야 할 것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도록 하는 그런 변화가 모여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은 거죠. 불편한 다리를 절뚝이며 “대한민국 알잖아요?”라고 되뇌이던 영구임대주택 주민분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돈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강청완 기자(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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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2016년 '故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오류', 2018년 라돈 침대 파동을 단독 취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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